등산登山
산과 인간 즉 자연과 인간은 하나이다.
자연으로부터 얻은 생명이 살아내기 위한 호흡,
그것이 삶의 원천이고 궁극적인 목표이다.
집가까이에 산을 두고도 멀리했던 곳이 해운대 장산.
걸어야지 걸어야 산다더라 하면서도 게으름으로 변명하던 산으로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오른다.
육중한 내가 밟는데도 아무런 반응없던 산이 앞서 걸어가던 아기가 넘어지자
나무에 붙어있던 매미를 훅 떨어뜨린다.
여름이 그렇게 떨어지고 아기는 달린다.
꽃이 진자리, 물이 지나간 자리로 되돌아오는 계절과 마주치는 바람은 깨끗하다.
등으로 이마로 흘러내리는 땀이 눈앞을 가로막지만 나는 걷는다.
조끼를 벗어라는 친구의 말에 그제서야 잠깐 발을 멈춘다.
숨이 멎을 것 같던 힘겨움이 순간 사라지고 맑은 하늘을 올려다 보는 여유를 즐긴다.
산의 기운이 내게로 들어오는 것 같은 감미로운 느낌.
앞서가는 친구, 내 손을 잡아주는, 멀찍이서 기다려주는 이도 동기동창이다.
같은 추억의 언어를 나누고 웃음이 손으로 번지는 친구들과의 산행을 받아 준 그들.
지난 사연들을 노래처럼 공유하는 시간이 소중하다.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던 오르막이 드디어 억새풀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며 등을 밀어주는 우정이 정상을 보게한다.
억새의 군무가 펼쳐진 장산은 하늘과 닿아서 모든 사람들을 흡수하고 함께 웃는다.
바람따라 일렁이는 억새를 찍는 사진사들의 진지함도 날아다니는 잠자리도 가을의 풍경이다.
산으로 들어간 나와 하나가 된 자연은 늘 내곁에 머물러 주었지만 느끼지 못했다.
산행의 참맛은 점심식사 시간, 난 빈몸으로도 힘겨웠는데
친구들은 갖가지 음식을 베낭에 매고 올라왔다.
얼린 막걸리에 족발, 찰밥, 상치와 풋고추, 그야말로 만찬이다.
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하며 된장에 풋고추를 푹 찍어먹는다.
입안이 얼얼하도록 유년의 얘기가 빠질 수 없는 우리는 친구이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 계절처럼 흘러가서 어느덧 가을로 접어들었다.
삶은 계란, 찐 고구마, 땅콩 등을 후식으로 내놓는 손은
비록 학창시절의 그것은 아니지만 정겹고 배부르다.
달착지근한 유년이 목으로 넘어간다.
땀으로 젖어있던 등이 서늘해질 무렵 눈에 익은 길을 따라 천천히 발을 옮긴다.
고단했던 나와 동행한 여정이 끝나가고 있음은 하늘이 점점 붉어진다.
술렁이는 억새를 물리고 바람도 한결 잦아지는 산을 뒤 돌아보니 과거가 넓고 훤하다.
손이 살짝 떨리고 다리도 흔들린다.
산이 있고 친구가 함께한 등산이 오늘의 역사이다.
떨림이 있는 삶의 주인공은 살아있고 또한 살아낼 것이다.
자연으로 흡수되는 그날까지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