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야 mom 2011. 2. 6. 18:29

입춘이 지난 날씨는 봄이다.

엄동설한을 넘기니 거짓말처럼 따뜻한 봄날이니 계절이 제대로 가고 있는건지 의아하다.

 아들은 서울에서 친구아버지 초상을 치루고 난 친정을 거쳐 시골로 갔다. 아흔여섯 되신 어머님을 뵈러 갔지만 이내 부산으로 모셔와야 했다. 상수도가 얼어서 식수난에 화장실 출입도 불편한 시골집. 충북과 경북의 경계에 사는 시누네는 보이는 것 모두가 눈으로 덮혀있다. 얼어붙은 냇가, 비닐하우스 위의 눈, 발을 떼어 놓기가 두려운 마당에서 녹아내리는 눈물을 본다. 지난밤에 새끼염소가 동사를 했는지 우리에 쓰러져 있는 염소. 벌써 세마리째 희생이다. 몹씨 추웠던 겨울은 점점 따뜻한 햇살에 쫓기는 듯 빠른 걸음으로 달아난다.

 원하지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 없이 어머니를 모셔와야하는 상황이다. 시누내외가 제주도 여행을 예약했다니 노인 혼자 시골집에 머물수는 없었다. 예외이고 싶지 않은 자손이 어디있겠냐만 살아있는 조상을 내몰라라하기엔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부산으로 오시면 며칠 지나지 않아서 갑갑해하시며 시골에 데려다 달라고 하기를 몇 번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쩔수 없다. 상대는 '엄마'이기 때문에.

 동행은 사실 두렵다. 같은 여자이고 며느리이며 동시대를 살고있는 인물이라 자유롭지 않다. 기억이 희미해지고 밤이 두려운 어머니는 낮잠을 주무시고 밤에는 파수꾼처럼 날밤을 샌다. 잠을 자는 동안 의식없이 하늘로 불림을 받을까봐 노심초사하시는 어머니. 그렇다고 딱히 나를 불편해 하지 않는데도 내가 불편한거다. 이중적인 나를 나도 모르겠다. 살아 갈 날보다 하늘로 가는 길이 멀지 않은 어머니는 벌써 답답하신지 베란다 창문을 열어 멀리 바다를 보고 있다. 몇 번의 봄을 맞이 하실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영원히 함께라는 단어는 없지 않은가. 

 주일이자 휴일이라 祖 孫 子 婦가 윷놀이를 한다. 눈높이가 같은 윷놀이는 이해타산이 없다.

단지 즐거움만 살아있는 놀이문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