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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日脫

후야 mom 2010. 5. 22. 13:07

 삶의 자리에서 한 발짝을 옮겨가면 새로운 시간을 만난다.

신세계는 말이 없어도 과격한 몸짓이 없어도 '침묵'으로 통한다.

하늘과 땅이 어우러져 단물을 만들고 꽃을 피워 '情'을 나누는 곳에서 비로소 나를 만난다.

동생과 휴가를 얻어 찾아가는 길은 김천 '수도암'

 

 새벽을 달려가는 기분은 순정하다.

두려움과 설레임으로 만나는 'Temple stay' 겨우 10시에 맞춰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던져 놓고 법당으로 안내를 받는다.

목탁과 징소리가 울리는 법당에는 학생들의 땀이 향으로 태워진다.

스님의 속삭이는 듯한 경전이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성스러운 기운이다. 곁눈질로 절을 따라해 본다.

거듭되는 절로 금새 땀이 솟는다. 이게 첫걸음이구나.

새벽예불(3시30분) 사시공양, 10시 예불, 11시 20분 사시공양, 5시 사시공양, 7시 저녁예불 오후 9시 취침이다.

 매 예불시 백 팔 배는 기본이란다.

무엇보다 경전이 입에 붙질 않으니 연습을 따로 해봐도 어렵다.

얼마나 나를 죽이며 내려앉아야 부처가 보일까.

3박4일간의 시간은 시작되었다.

수도암은 기도도량으로 알려진 해발 1050m에 위치한 절로 지금도 禪房에는 스님들의 '하안거' 중이란다.

개인적으로는 천주교인인데 '자아성찰'에는 왕도가 없다.

聖과 俗은 겨우 다리 하나로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왜 그리도 어려운지.

말복 중에도 절에는 보일러 가동 중이다. 절을 많이하여 뭉친 근육을 푼다라는 의미도 있고 실제로 밤 기온이 낮다.

침묵보행 중에 따라 다니던 잠자리도 잠들었는지 별만 가득한 밤이 지나간다.

 

 주지스님 방에는 몇 권의 책과 장삼 한 벌이 벽에 걸려있다. 손수 달이는 차향이 깊다.

그윽함이 묻어나는 차 한잔으로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소중하다.

 禪은 자기 내면의 거울이라고 말씀하시는 스님은 겸손 그 자체이다. 

어느 보살이 직접 제다한 차를 선물했다며 첫 개봉을 우리에게 나눈다.

절에서 사는 사람들의 얼굴이 참 맑다.

뭉친 다리 근육이 쉽게 풀리지 않을 모양이다. 절뚝이면서도 절을한다.

풀어내고 씻어도 내 속에서 웅크린 아집들이 있는지 명치에서 올라오는 욕망들로 힘든다.

허방을 짚고도 허방인 줄 몰랐던 청년이 울음을 머금고  엎드린다. 

'석가모니불'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일으킨 불로 새로워질 것이다.

 학생들은 경전도 잘 따라하고 천배에 도전하기도 한다.

돌계단을 내려오는 게 눈물겹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기만 하였다.

갇혀있다는 절박함으로 스스로를 탈출시키고 싶었다.

기회가 닿아 나선 길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런 삶을 꿈꾸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 길을 되짚어 나가면 다시 이어질 삶들이 기다리고 있을거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시간을 기억하며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충전된 시간들로 하여금 웃게 되겠지.

짐을 싸면서도 돌아보게 되는 풍경들 그리고 목탁소리.

그리워 질 것이다.

출처 : 미타산.신반중학교 21회
글쓴이 : 이해연 달맞이 꽃 원글보기
메모 : 김천 수도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