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말 53

소설 小雪

11월도 중순을 넘어간다 가을은 겨울에게 길을 내어주고 조용히 사라져간다 젊음이 늘 그곳에 머물러주길 기대했건만 점점 지워져가는 나의 청춘 첫눈이 올 것 같더니 비가 내린다 내속에 갇혀있던 것이 낙엽이 되어 젖는다 겨울에는 봄을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허탈하고 슬퍼진다 핑계가 있다면 청년과 장년사이라 할까 아니면 노년인가 코로나19로 인한 답답함이 있었지 그 시간이 자꾸만 길어져 길이 보이지 않기도 하다 눈이라도 내리면 불안하지 않을텐데 나는 점점 짧아져가는 그림자인가 싶다 비가 내가 내리는 소리가 없다

꽃의 말 2020.11.22

가을비

비는 밤부터 내리기 시작하더니 아침이다 감나무 밑에서 물 한모금 기다리던 여자, 콩 비닐을 덮어쓴 마늘과 양파도 갈증 해소가 되었겠지 낙엽이 한 잎 내손으로 들어온다 쓸쓸하다고 쓸까 비, 물이 소중한 아침 뒤란에 시멘트 작업했던 곳에도 물방울이 떨어진다 점점 색이 바래져가던 노랑국화 그 남자 옆에서 눈치만 보던 수국 붉은 제라늄 그들에게도 가을품이 넉넉하다 밥에 넣을 콩 까는 손이 바삐 움직인다 구수한 냄새가 집안가득 풍성한 가을아침 여자, 가을비 오다

꽃의 말 2020.10.22

가을 단상

9월이 오는 소리에 잠을 깨면 어느새 높아진 하늘과 바람 살갗에 스미는 서늘함마저 정겹다 발밑에 두었던 이불을 당겨 덮게되는 시절 덥다고 아우성이던 질긴 인연의 여름은 소리없이 사라지네 아파트 화단에 가을꽃을 심는다는 방송이 나오더니 편한 복장으로 참여하라고 한다 가을색을 입히겠다는 말씀이지 황국화가 곧 피겠다는 얼굴이다 내가 좋아하는 구절초의 보라빛은 아니지만 곧 다가올 수확의 계절에는 황색이 더 어울린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아침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도 소확행 에어컨을 켜면서 시작된 아토피성 피부가 조용하다 병원에 안간지 며칠이 지나간다 급격한 온도 변화에 민감한 피부 때문에 꾀병(?)을 앓았다 가을냄새와 함께 사라지길 소원한다 한여름에 쓰러져서 자식들 소환령 발부하던 엄마 소슬바람에 기운차려서 명..

꽃의 말 2018.09.05

Dear 이해연

하늘이 높아가는 가을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받고 싶은 계절에 늙은 이해연에게 쓴다 나이 육십이 넘었으니 희노애락도 초월하고 시공간도 넘어서야 하는데 아직도 네가 우선이지? 머리카락은 억새처럼 늙어서 바람에 흩날리고 시간을 접어 넣은 주름살은 언제 펴질까 생각하면 어이없는 삶이건만 그래도 아침 햇살이 저녁에 지는 해보다는 덜 쓸쓸하다 가끔 관심과 사랑을 같은 것이라고 착각 할 때가 있음을 알고 있다 자유를 찾아 집을 나간 사람에게 집착을 하는 너를 보면 안타깝다 각자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자 하면서도 내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으니 한심한 사람 결혼생활 36년을 이어오면서 내게 남은 건 신뢰라는 단어 뿐 사랑도 아니고 정도 아니면 의무만 남은걸까? 神이 주신 아들도 결국은 내것이 아님을 이성적으로는 ..

꽃의 말 2016.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