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클수록 달려가는 힘이 배가될까 ,
아니면 소박하게 꾸는 꿈을 쫒으며 주위와 더불어 걸어도 닿을 수 있을까.
요즘의 TV는 청소년이 대세다.
노래와 오락물이 그렇고 심지어 드라마까지도 십대들의 잔치다.
꿈과 희망이 존재하며 마음껏 노래와 춤을 출 수있는 학교라는 무대가 있다.
테마가 꿈이라서 그런지 현실과 쉽게 타협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고집스럽게 자기 고유의 색깔만으로 고난을 극복해 나가기도 한다.
과정이 없는 성장은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허물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일어나는 몸의 변화와 맞물려 이성에의 도전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대상이 무형의 문화예술이 아닌 숨쉬는 여자이기 때문에 심적인 갈등과 고민이 따른다.
내 것에서 남의 것으로 옮겨간다면 전부를 잃어버렸다고 주저앉게 된다.
상실감은 쉽게 치유되지 못하는 성질의 그 무엇인게다.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것 또한 그를 쓰러뜨린 존재이다.
드라마가 그들에게 던져주는 메세지는 존재감 위에 있는 정체성일텐데
심상은 보이지 않고 애들처럼 어둔 곳에서 방황하고 있다.
용수철같이 발산되는 힘이 있는 무대와 봄을 닮은 풋풋한 향기가 아쉽다.
포장된 언어가 아닌 참말이나 환한 말이면 이미지가 살아날까.
회가 거듭될수록 보여지는 것에 치중하다 보니 허구에 매달려있는 드라마.
광장으로 불러내는 청춘의 호흡은 적어도 진실한 자기음성이라야 한다.
손을 잡고 포옹하는 청소년들의 스킨쉽은 물흐르듯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
몸의 언어를 잘 받아들이면 눈빛도 살아있겠지.
달콤한 노랫말처럼 입속에서 펼쳐지는 파라다이스 세대가 부럽다.
시대를 반영한다 하여도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기성세대를 잊으면 공허하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