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말

내소사에서 만난 나

후야 mom 2013. 1. 25. 10:01

비와 시작되는 봄길에

터미널 앞에서 동백꽃처럼 웃는 친구를 만나 동행한다

테마여행을 하자고 약속했던 시간이 막 이루어지는 순간, 빗방울이 어깨위로 떨어진다.

유년을 함께 뒹굴며 까르르 웃어 넘긴 우리는 염색을 하지 않으면 거울보기가 두려운 중년이다.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역할에 쉼없는 나와 전방주시에 열중하는 친구

가로수도 같이 부안으로 달린다.

강추위에 얼어붙었던 냇물, 그늘에 쌓여있던 겨울의 잔해들도 내리는 비에 녹아 내린다.

소소한 일상이 쌓여서 계절이 되고 또한 산도 옮기지 않는가

짙은 안개로 하늘이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나와 공감하며 영원한 지지자이듯

하늘아래 존재함을 잊지 않는다.

지난 몇달 동안 아들 혼인준비로 인한 심신의 피폐함을 핑계로 치유의 시간이 필요했다.

꾹 다물었던 입을 무장해제하고 싶었지.

수다로 입술이 마르면 친구가 마련해온 대추차로 적셔가며 눈은 이정표로 옮겨간다.

전북 부안 곰소항을 지나니 내소사 안내판이 보인다.

내심 설경을 기대했지만 고즈늑히 비에 젖고 있는 천년고찰이 눈으로 들어온다.

전나무 숲길이 산문을 열어 반기는 절다운 절은 봄이 먼저 와 있었다.

길 끝에 보이는 문이 바로 능가산 밑 내소사로구나

와 보고 싶었지 꿈길에도 찾아왔었지 하소연하고 안아달라고 하고 싶었다.

보살처럼 겸손하게 서 있는 벚나무에게 눈인사를 한다.

길은 어디든 있고 열려있지만 聖과 俗은 경계가 있어 상대적이기도 하지

늙은 나무 한그루가 비에 젖어 너덜너덜하여 마치 내 모습같아 슬프다

단청공사로 출입이 어려운 대웅전은 자연그대로인 채 속살마저 곱고

연화, 매화문양 창살을 배경으로 친구와 기념 사진을 찍는다.

언제 다시 이곳에 닿을지 기약없는 시간 그립고 애닯은 사랑이 지나가고 있는게다.

고향집같은 절을 뒤로하고

함평에 사는 지인의 안내로 한옥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온돌방을 닮은 아주머니가 湖南歌를 멋지게 불러 감탄했다.

예향이라 그런지 발이 닿는 곳마다 魂이 남다른 호남.

살아있어 보는 즐거움 듣는 기쁨 또한 몸으로 전해지는 야릇한 기운까지도 정겨운 봄밤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용천사에서 꽃무릇 군락지도 만나고

들꽃 세상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식물원도 그곳에서 살아내고 있었다.

삶의 자리가 어디인들 아름답지 않으리오

연 이틀을 비와 동행했으니 들뜨지도 가라앉지도 않게 그만큼을 유지하였지

집을 떠나와 세상을 사랑했으니 더도 덜도 모자람 없이 충만한 나의 자리.

영산강가에서 버들강아지를 만지니 부드럽고 따뜻하다.

길게 호흡해야 이것 역시 다시 만나지 않겠는가

바람은 찹지만 서로 주고 받는 눈길은 따숩다.

발 한쪽을 걸쳐 놓고 저울질 했던 시간들이 영산강으로 흘러가고

하늘에 맡긴 청춘이 내 손에서 풀어져 달아나다가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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