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을 여몄는데도 살속을 파고드는 바람이 제법 찹니다.
머리속에 벌레를 가둬둔 것처럼 웅웅거려 걸음이 느리고 더디갑니다.
눈앞에 가물거리는 지난시간, 바람이 아무리 손을 잡으려해도
달아나는 기억을 어쩌지 못하고 망연히 바라 봅니다.
성당 가는 길에 만난 가을은 뭐가 그리 바쁜지 휭하니 내 앞을 지나갑니다.
마치 연인을 만나러 가는 양 연시볼에 성장까지 하고서 달립니다.
새벽의 눈물바람이 미사중에도 내내 훌쩍이게하여 당황케하더니
하늘이 보이는 곳으로 나왔는데도 어지럽기만 합니다.
내게 신앙이 있다는 건 기꺼이 살아 낼 힘입니다.
뉘가 내속을 알아주겠으며 손을 들어주리오.
미사 강론 내용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 옆의 죄수 하나가 애원합니다.
'당신이 하늘나라에 갈 때 나를 기억해 주시오'
그러자 예수가 '그대의 믿음이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들 것이다'라고 합니다.
30년을 살아 낸 아내를 한순간에 바닥으로 내치는 그대의 믿음은
지나가는 바람보다 더 가볍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하늘에 있는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이루어집니다.
멀리있는 행복을 찾아가려고 몸부림치는 건 중세 고전에서 잠자고 있지요.
믿고 기다리면 어느 순간 분노가 미소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보게 되겠지요.
자식을 키우면서 성자가 되어가는 자신을 만납니다.
존재만으로 흡족한 에미는 그옛날부터 바보였습니다.
그러나 믿습니다.
믿는만큼 살아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