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女子, 어머니(母)

후야 mom 2011. 2. 24. 16:22

베란다를 통해 마루로 건너오는 햇살이 제법 두껍고 따뜻하다.

동장군이 완전히 물러갔는지 외투를 걸치지 않아도 견딜만한 봄날같은 정월.

설에 뵈러갔다가 따라나선 어머니는 올해로 96세(1916년생)이다.

점점 기력이 쇠하여서 등이 굽어지고 걸음이 더디다.

늘 꿈만같다 라고 중얼거리며 과거와 오늘을 혼동하고 내일을 두려워하는 여인이다.

내가 그녀를 만나 건 32년 전이다.

남자친구의 어머니 생신이라며 인사를 갔는데 쪽진머리를 하고 긴 담뱃대를 물고 계셨다.

한 눈에 기개가 세고 보통의 어머니상이 아니라는 생각에 두려웠던 기억이 있다.

그 즈음의 연세는 60대 초반이었을텐데 이미 전설적인 시어머니가 되어있었다.

결혼한지 31년차가 된 그때나 지금이나 고집과 기품은 여전하다.

마루가 따뜻할 때 목욕을 하자고 하니 손사래를 치며 주저 앉는 어머니는

일생 남의 손을 빌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욕조에 물을 받아두고도 실랑이를 벌이는 故婦는 같은 여자임에도 가리고 싶었던게다.

옷을 벗기니 앙상한 몸뚱이만 덩그런 어머니.

 따뜻한 물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편안한 웃음을 짓는다.

"일생에 처음으로 며느리에게서 호강하는구나"

자존심이 상하셨나.

새옷으로 갈아입고 음료를 마신 어머니는 봄빛같이 볼이 발갛다.

이제 아이가 되어 자식에게 몸을 맡긴 어머니는 영원히 늙지 않는다.

하루가 멀게 시골로 데려다 달라고 떼를 쓰는 어머니는

시골집에 물이 얼어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바깥에 나가서 하늘도 보고 땅의 기운도 밟다가 그러지 못하니 답답한거다.

낮에는 졸고 밤에는 늦게까지 주무시지 못하는 어머니는 하루종일 화투놀이를 한다.

널어놨다가 걷었다를 반복하며 노래처럼 중얼거리는 과거사에 리듬도 실렸다.  

시골로 떠나는 날 며느리의 손을 잡고

" 시에미 대접 잘해줘서 고맙다 언제 또 보겠니 "

경주 감포바다의 물빛이 차고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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