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건전지((energy)

후야 mom 2010. 11. 23. 14:37

 청소기 손잡이에 붙어있는 버튼이 작동을 멈춘지 오래여서 아들을 시켜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평소에는 쉽게 몸통에 있는 버튼으로도 충분히 청소를 하던터라 별 생각 없이 보냈다. 서비스맨의 첫얘기가 건전지를 바꿔 보았느냐고 한다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아둔한 머리덕에 늙은 에미의 모습을 들킨 것 같아 창피하다. 전자제품에는 컨트롤 장치가 부착되면서 자연히 건전지를 사용하게 된다. 새것을 구입했을 때에는 안내책자를 보고 사용설명서를 충분히 숙지했었다. 당연히 건전지는 소모품이라는 것도 포함해서.

 

 계절이 계절인만큼 나의 삶에도 지금쯤 건전지를 확인해 볼 싯점이다. 새것과 중고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건 아이들도 아는 사실일테고 그보다 먼저 몸이 반응을 해온다. 책장이 넘어가는 시간이 길어지고 단단하고 시큼한 음식은 싫어진다. 어깨통증에 병원출입이 잦아지고 갱년기장애까지 나타나는 중고인생이다. 초저녁잠이 달디달아서 남편이 귀가하는 줄 모르고 잠들기 일쑤이며, 드라마에 심취하여 눈물샘이 마르지 않는 것 또한 늙어가는 증세인게다. 무념무상시절이 있긴 했던가. 생각에 생각의 꼬리가 길어져서 목위의 머리가 무거울 때가 종종 있다. 거창한 자아실현이 아닌 현실적응 훈련중에 생겨난 악습을 끊지 못해서 앓는 병이다. 사람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질 못한다. 좋은 말만 듣겠다는 이기적인 성향이 매우 강해서 혼자에 익숙하다. 내속의 상처가 깊어 남의 얘기에 몰두하지 못한다. 나를 벗겨 표현하고 사랑하는 일은 오로지 글쓰는 작업장이 편하다. 문장하나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은 살아있다는 희열을 느끼게하니까. 몸으로 흐르는 에너지가 고갈되어 일어나는 증세인지 자주 두통이 일고 어지러워지고 있다. 인간도 청소기처럼 새 건전지를 끼우면 되살아질까.

 

 청소기에도 이력이 있다. 비록 신제품에 밀려난 기기지만, 손이 닿지 못하는 곳까지 청소가 가능하여 더 편리하게 생활 속으로 들어와 나를 도와주었다. 10 여년을 가까이에서 온갖 투정 다 받아주었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꼈던 나의 최측근이기도 하다. 세월이 지나면서 색도 바래고 흠집에 때가 끼었다. 쉽게 부릴 줄만 알았지 닦고 기름칠해주지 않았던 자신에게 항의를 한 것일까. 건전지를 갈아 끼우니 거짓말 같이 부드럽고 싹싹하다. 구석구석 돌아가며 먼지를 흡입하는 힘이라니 대견하다. 옛날의 영광을 찾은 청소기의 힘은 관심이려니.

 

 감기몸살 기운이 오래가는 것 같아 대추와 생강, 그리고 계피를 넣어 찜통가득 약차를 달였다.  따뜻한 계피향이 집안으로 퍼지며 달콤하다. 이미 지나간 것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자고나면 분명 내일이라는 선물이 기다릴테고 해가 기울지 않는 한 어둔밤이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믿음이있다. 점점 약해지고 감상적이 되어가는 자신, 지금 자각하지 못한다하여도 슬프지 않다. 나의 영혼을 살리는 에너지는 하늘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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