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네가 누구냐

후야 mom 2010. 7. 27. 16:54

 고향을 가기 위해 동창회에 가입하고 친구를 만난다. 거의 40여년을 외지에서 늙어가는 타향살이가 위로를 받고 재충전의 기회가 오늘부터 시작 되는 것이다. 경남 의령 이곳에서 초, 중학교를 다녔으니 유년의 기억이 깊다. 고향집의 시원한 마루가 생각나는 동창회는 선,후배가 모이는 대동창회다. 여전히 흙먼지 날리는 학교 운동장에는 이미 선,후배가 자리를 잡고 인사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다. 여기 오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친구들이 서로의 얼굴을 기억하며 손을 잡는다. 이름이 가물거리는 시간들과 과거여행을 하는거다.  때때로 바람이 불어와서 눈물을 훔치게하지만 이내 행복한 웃음을 주고 받는다.  수십년을 뛰어 넘어가면 보리가 익는 하학길의 악동들은 어김없이 보리를 꺾어 구워먹곤 했다.  입술주위가 새카맣게 그을음을  묻혀 집에 들어서면 선 채로 우물가에서 물바가지 세례를 받곤했다.  그렇게 자라난 고향을 몇 십년을 잊고 살았다니 어디서  트롯가요가 들려온다. 행사가 시작되려나보다.

 누군가 옆을 지나가는 것 같아 쳐다보니 내 언니다.  반가운 마음에 쫓아가서 '언니'라고 불렀다.  순간 그녀는 나를 향해 '네가 누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황당한 나머지 주위에 있는 언니 오빠들에게 자기 동생더러 누구냐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반문했다. 그렇다 그녀는 내언니이며 또한  다른사람이기도 하다.  동생을 부정한다는 것은 부모님을 부정하고 존재마저도 부정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내뱉았을까.  다른 친구들보다 사춘기가 조금 빨리 시작된 나는 여섯살이 많은 언니가 늘 부담스런 존재였다.  오남매를 둔 부모님은 첫 자식이고 맏이인 딸이 얼마나 예뻤을까 지금에야 이해를 한다. 내 위에 언니와 아래로 큰아들과 작은 아들, 딸 . 그 중간이라는 위치는 나를 위축하게 하였고 늘 불안했다.  공부 잘하는 자식이 자랑거리이며 대견했겠지.  학교에 가면 내이름보다는 누구의 동생으로 보기 일쑤이고 동네 어른들조차도 맏이만 기억하는 이상한 현상을 보면서 자랐다.  눈치만 늘고 말은 점점 줄어들어서 묻는 말에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고집통이 되어갔다.  방학이 되어 성적표를 받아든 엄마는 큰 딸과 맏 아들에게만 칭찬을 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물론 내성적이 언니를 따라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긴해도 설령 같은 백점이라해도 유독 나에게만  편애하는 엄마 뒤에서 늘 기가 죽는 사춘기소녀로 자랐다.  자동차 운수업을 하는 집이라 엄마는 늘 바빴고 심부름을 하는 이웃의 오빠가 함께 살았던 우리집.  아침밥 먹고 설겆이를 마쳐야  학교에 갈 수 있는 나와 반대로 언니는 자기방에서 차려준 밥상을 치우지도 않고 등교했다.  공주와 시녀가 되어 자라온 내력은 나만 기억하는지 대수롭잖게 여기는 그녀가 미운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언니처럼 책을 들고 있으면 일을 시키지 않겠지 하고 시늉을 낼라치면 어김없이 날아드는 회초리를 받아야만 했다.  분명히 계모일 것이다 라며  일기장에다 눈물을 그리곤 했던 어린 날.  유일하게 내편이 되어주시던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렸다. 둘째로 태어난 슬픈 내력을 아버지는 가슴으로 품어주셨다.  마치 말없이 장독대 뒤에서 집안을 지켜주던 접시꽃처럼 큰 거울로 말이다.    

 직장생활을 한다며 도시로 나간 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하겠다며 남자를 데려왔다. 부모님의 반대도 아랑곳 하지 않는 성격이라 거침없이 결혼이 진행되었다.  어쩌면 나의 머리 속에는 부재의 자리가 내 차지가 된다는 생각을 했으리라.  중학교 1학년 때 언니가 부산으로 시집을 갔으니  좋은 기억보다는 야릇한 독기같은 것이 내 속에 자라고 있었다.  호랑이 떠난 자리를 토끼가 차지하듯이 은근히 상황을 즐기곤 했다.  애틋한 우애를 배우지 못했던 남매들과 탓하지 않은 엄마의 묵인이 오늘에 이른 것일까.  마치 자신이 엄마가된 것처럼 동생을 무시하던 성품을 지금까지 갖고있는 그녀.  성인이 되고 아이를 낳아 기른,  중년이 되고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왕래가 거의 없이 남처럼 살아왔다.  아버지 기일이나 명절에만 겨우 만나는 관계,  그래서 그랬는지 고향에서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앞섰나보다.  형제는 대결구도가 아닌 정을 나누는 관계가 아니던가 무엇이 그녀를 분노하게 했는지 오히려 묻고싶다.   아래 동생들 특히 막내와는 살가운 정이 깊다.

 옛집을 찾아가는 골목으로 들어서니 감꽃향이 기분을 살린다. 떡방앗간을 지나고 눈에 익은 담장에 발을 멈춘다. 기와집이던 나의 집은 사라지고 양옥이 들어서 있다. 우물가의 꽃들도 남새밭도 없는 낯선집, 금새 눈물나는 시간이다.  우리가 일어나지도 않은 이른 새벽에 물을 길어가던 이웃들도 보이지 않는다.  널판지 대문은 존재하지 않고 녹슨 철문이 닫혀있다. 그리워 그리워하다가 돌아가신 내 아버지 생각에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엄마 심부름을 가다가 돈을 잃어버려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버지를 기다리던 그 골목에서 ,아버지를 살려낸다.  캄캄한 밤에 울려퍼지던 아버지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달려가던 여자애는 쉼없이 늙어간다.  대문앞에서 돌아서니 벌써 내가 살고 있는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도시의 높고 완강한 건물들과 긴 그림자를 따라 발걸음이 빨라지고 또한 가슴없는 풍선처럼 사위어간다.

 이제 오만의 껍질을 벗을 때가 온 것 같다. 내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녀의 동생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배려라던가 용기가 부족한 탓도 있겠지.  같은 하늘을 공유하고 어머니가 생존하고 있는 현실을 잠깐 잊어버린 나를 찾는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나를 고해소에 맡기려한다. 그리고 언니에게 전화를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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