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중산소에 벌초를 하기 위해 대소가가 모이는 날. 고향 경북 의성 단밀로 달려가는 시각은 오전 6시 하늘은 잔뜩 우울하다. 가을장마로 인한 눅눅함이 몸으로 전해져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날이다. 고속도로에는 이미 벌초객들로 차량들이 증가하고 ,가을비에 코스모스가 흔들리는 들녘으로 익어가던 벼들도 멈춰선 듯 세상이 온통 비를 함초롬히 맞고있다.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산천경계 유람하는 철없는 아내.
4시간여를 달려서 도착한 산소에는 조카들이 어른들을 도와 제초작업이 끝나가고 있다. 몇 군데로 흩어져 있는 산소가 많아서 고향에 계시는 사촌시숙이 미리미리 해 놓은 상태라 마무리만 한다. 일도 일이지만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가족간의 우의도 다지는 뜻 깊은 행사이다. 일 년에 두 번 청명, 가을 벌초는 연중행사로 자리매김 되어 고향으로 찾아드는 철새들처럼 모여든다. 형, 아우, 조카 동서들 많으면 많을수록 도타워지는 정이 깊은 동네 단밀. 담장위로 뻗은 감나무의 내력이 조롱조롱 매달린 대추랑 붉게 익어간다. 여자가 시집을 오면 어머니가 되고 할머니로 살아내는 여자들만의 역사가 칼날에 스러져가는 잔디처럼 서걱인다. 애써 기를 쓰지않아도 어느 순간 저 봉분이되어 누워있을 그런 내일은 싫다. 옹이가 박힌 동서의 손을 잡으면 내가 괜스레 눈물나고 슬퍼진다.
남편은 형제, 조카들과 나눈 술이 온몸으로 퍼지는지 나더러 운전하란다. 화북면 용화리 어머니가 계시는 곳으로 달린다. 시간반 정도 걸려서 도착한 시누네에는 말린고추 손질에 여념이 없다. 허름한 창고에서 주문 받은 고추 다듬고 있는 형님의 얼굴이 저녁놀빛이다. 창고안이 온통 붉은색으로 마치 태극전사를 응원하던 붉은악마들이 들어차 있는듯 하다.
점점 어두워지는 가을저녁에 찾아든 손님처럼 내리는 비가 밤을 새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