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지

남이섬에 가다

후야 mom 2011. 10. 15. 17:16

 바람을 닮은 코스모스를 따라 길을 나선다. 

어느새 가을이 성큼 내곁에 와 있었는지 바람과 물이 이미 물들고 있다.

산이 바다가 긴 여름을 이기며 살아내고 있을 때 그때는 물난리로 세상이 몸살을 앓고 있었지.

산천은 언제 그랬냐싶게 제 삶을 잘 살아내고 있다.

만나는 사람들의 냄새가 코끝에 와 닿는 느낌이 바로 가을이다.

여행은 또 다른 나를 기억해내는 작업이랬지.

동승한 남편과 티격태격 말다툼을 하면서도 기분이 좋은 건 살아있다는 희열이다.

동해 해변로를 따라 강원도까지 달린다.

포항 영덕 강구를 거쳐 영월에 닿는다.

영월에는 몇년전에 들렀던 임원항이 있다. 

갯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어구에 내려 지난 추억을 살려내며 골목을 돌아나왔다.

회를 파는 곳의 불빛을 기억하는 감성이 새롭고도 달콤하다.

연휴답게 사람들로 북적이는 동해안,

삼척엔 환선굴처럼 거대한 역사가 있고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설악산 이른 단풍을 구경하기 위해 속초까지 가야하지만 남애항에서 하루를 묵는다.

길하나를 사이에 둔 주문진항에 가서 생선과 막걸리를 샀다.

어디를 가도 부딪히는 사람들 그들도 가을을 찾아나선거겠지. 저녁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아침 일찍 속초를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양양를 지나가는데 강변에서 '국군의 날'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전투장비를 설치해 놓고 일반인들에게도 경험을 할 수 있게 군인들이 도와준다. 

한쪽에선 건빵을 나눠주며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한다.

지난 세월 남동생들이 이곳 언저리에서 군대생활을 했었다.

손과 발이 얼어서 허옇게 부풀었던 기억이 부동자세로 서 있는 군인을 보자 눈물이 난다.

고마운 젊은이들. 조금 더 올라갔을까 낙산사 팻말이 보인다.

설악산에 일찍 도착해야 하는데 곁눈질이 한창이다.

낙산사는 년전에 화재로 전소된 상처가 있는 절이다.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입구에 의상대가 있다.

담쟁이 넝쿨이 붉게 물들어가는 고찰은 동해안의 절경을 안고 있다.

설악산의 단풍을 구경하려고 일찍 서둘렀건만 입구에서 돌아나와야 했다. 

전국민이 죄다 이곳을 찾아왔는지 몰리는 차량을 수용할 수가 없다

설악산을 뒤에 두고 되돌아오는 기분은 말로 표현이 안될 정도로 슬펐다.

가장자리부터 엷게 물들어가는 설악을 옆모습이라도 볼 량으로 인제를 잇는 터널로 간다.

산행을 해도 전체를 보지 못하고 한쪽만 보다가 돌아가면서 측면을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둥근 것 같으면서 각이진 산은 우리네 민초들이 겪어온 삶과도 이어져 있다.

골골마다 색이 다르고 높은것과 낮은 것이 조화를 이루며 같이 살아내는 삶이 바로 설악이다.

햇살이 비치는 골짜기에는 명품 그림이 걸려있어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구름이 슬쩍 얹혀 있는 산봉우리에는 신선당이 있을까.

낙원에 든 기분이 드니 설악산 입구에서 돌아나온게 다행이다.

남이섬을 가기 위해 춘천을 택해 소양강을 거쳐간다.

춘천은 태생지라 늘 그립고 애틋한 곳이다.

호반의 도시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가을을 보여준다.

이른 추수가 끝난 논이 보이는가 하면 푸른 배추가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을 거쳐간다.

멀리 김유정역이 지나간다.

가평을 가야 남이섬을 갈 수 있는데 가는 곳마다 축제요

사람잔치가 한창이고 조금만 가면 가평인데 길에서 세시간을 허비한다.

거대한 주차장에 들어선 기분은 한참을 졸았는데도 그곳이고 되돌아 갈 수도 없는 형국이라 어이가 없다.

가평에서는 세계적인 째즈축제가 열리고 있어

인근 서울에서 젊은이들이 대거 몰려왔는지 도통 차가 움직이지 못한다. 

참으로 진퇴양난,  오후 6시에는 마감시간이라 남이섬에 들어갈 수가 없다

숙소를 정하기 위해 북한강변으로 나간 일행들.

시골은 밤이 되면 칠흑같은 어둠만 존재 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불안하고 두렵다.

어둠에서 꿈틀거리는 검은 기운이 싫어 몇구비를 돌아 겨우 마련한 숙소가 다행히 마음에 들었다.

씻고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내일을 위해 일찍 잠을 청한다.

쌀쌀한 가평 남이섬 입구에서 라면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간다.

배를 타는 시간은 매우 짧아서 강에서 피어나는 물안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

해가 솟으면 곧 사라져 버릴 물안개는 신비롭고 낭만적이다.

이윽고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남이섬 특수 관광지로 간다

'나미나라 공화국'이라는 국가개념으로 별칭하고 있다.

미리 두툼한 옷으로 무장을 했건만 손이 시렵다.

입에서 나오는 입김마저도 멋진 남이섬은 잘 정돈된 정원같기도 하다.

드라마, 영화 촬영지로 더 유명한 관광지로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많은 가족들이 보인다.

곳곳에 서있는 조각품이나 사진들, 명품 메타쉐콰이어 숲길, 소나무 길,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젊은 연인들 모두가 영화속 장면같이 아름답다.

세계인에게 자랑해도 손색없는 관광상품이다.

따뜻한 커피를 사들고 흔들리는 남편의 등을 꼭 붙잡고 이륜자전거를 타고 달리니 젊은이들이 부럽지 않다.

마주오는 사람들의 시선이 젊고 활기차다.

마음 같아선 종일 햇빛과 숲에서 세월을 논하고 싶었다.

어느새 담쟁이 잎에 열렸던 이슬이 사라지고 빛나는 가을이 등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준다.

사랑과 추억이 머무는 계절 남이섬에서 갈빛으로 웃으며 안녕.

횡성 한우 축제장에 들러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꽤 유명한 지역으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조용하다.

고기를 사고 인근 안흥에 들러 찐빵과 배추를 샀다.

밥을 해 먹을 적당한 곳을 찾다가 초등학교에 자리를 잡았다.

수돗가 옆에서 밥을 짓고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으니 황제가 부러울까. 

간간히 떨어지는 나뭇잎, 뒹구는 낙엽들 ,노란 국화꽃 화단에서 가을 만찬을 즐긴다

일행들은 숭늉까지 마시고 평창으로 나섰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이끌어 낸 곳이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너무 조용해서 이상한 평창은 올림픽 기류는 감지 되지않고 평범한 작은 도시다.

오후가 되자 집으로 가야할 시간을 가늠하기 시작한다.

갈길이 워낙 멀어서 재촉하게 되는 일행들, 집이 그리워지기 시작한걸까.

길을 나서면 집을 잊어야 여행의 참맛을 느낄수 있다.

잡다한 생각을 잊고 2박3일을 달렸다

마지막 전력을 다 해 그려내는 저녁노을이  어쩜 이리도 고울까.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일상이 시작되겠지만 느낌만으로 1년을 살아내겠지. 

나에게 특별하고 소중했던 가을날의 여행

다시 내일을 기다리는 삶이 아름답지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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