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마지막 하루를 남긴 오후에 남구청사 앞에서 남편을 기다린다.
종무식을 마치고 축배를 들고있는지 전화도 문자도 묵묵부답이다.
아들이 있는 거제도에 가기로 약속을 했건만 추위에 기다리게하는 남편,
두 시간을 넘기고서야 술이 거나하게 취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물론 밤 운전을 내가 해야하는 상황이다.
겨울밤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살갗을 파고드는 추위가 매섭다.
쉬는곳마다 화장실을 찾는 남편을 모시고(?)
밤바다를 가로질러 거제에 도착한 시각은 밤 10시
허기가져도 아들을 보니 따뜻하다.
후라이드 치킨에 술잔을 주고 받는 이 밤
일년을 보내는 싯점에서 뒤를 돌아보니 사연도 참 많았다.
행정달인으로 수상한 남편, 일년을 넘게 백수생활을 청산하고 취업한 아들,
다리골절로 병원에 입원한 어머님, 식구마다 시간과의 싸움이 치열했던 한해였다.
어느때보다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신앙이 있어서 힘이 되었고
또한 예비신자들과의 만남으로 보람이 있었다.
작은 잔에 담긴 술이 목을 넘어가는 순간 나의 지난했던 모든것들이 사라진다.
오후 햇살이 작은 창으로 들어오기전에 통영으로 간다.
거제에서 통영은 30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곳이다.
드라마 빠담빠담을 촬영하는 동피랑 마을을 네비에 입력하고
기계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는거다.
이름이 정겨운 동피랑마을은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배기에 있다.
오밀조밀한 골목길을 따라가면 벽마다 벽화를 그려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린다.
좁은 골목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어깨위로 파랑새가 앉아 있는듯 모두의 얼굴이 환하다.
천사날개가 있는가 하면 초상화가 있고 원색의 꽃이있는 골목 그곳은 신이 선택한 마을이다.
드라마는 매우 불운한 청년과 해맑은 여자가 만나서 엮어가는 세상살이.
노희경 작가의 극본은 인본주의를 중시한다.
드라마에는 박경리선생의 파시도 언뜻 비쳐지기도 하고
영화 데이지도 있다.
큰 길가에 있는 식당에서 복국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통영은 언제나 그대로의 얼굴로 그자리에서 살아있다.
남편은 세병관을 관람하고 아들과 나는 박물관을 구경한다.
통영이 낳은 걸출한 인물들 속에는 박경리님, 김상옥님, 유치환님, 김춘수님의 사진이 걸려있다.
호수같은 바다을 가진 통영의 겨울은 사람도 바람도 따뜻하다.
달력에 걸려있던 마지막 해가 바다 위에서 한참을 서성댄다.
내일은 새로운 해가 떠오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