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의 아침은 세차게 내리는 비로 시작되고 덧붙여 여행자들의 피로도 함께 말끔하게 씻겨지길 소원한다.
출근시간이 임박한지 도로에는 차량들과 사람들, 오토바이,자전거가 몰려 얽히고 설킨 중국의 도시 풍경을 본다.
분명히 네거리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있건만 무시하고 서로 앞다투어 건너가려 필사적이다.
역동적인 아침 풍경에 우리가 탄 대형버스 기사 역시 용사같이 헤집고 다닌다.
통화에서 집안까지는 1 시간 30 분정도 걸린다며 서둘지만 비가 오는 날씨탓에 시간이 길어지는듯 하다.
외형이 그럴듯한 집안 박물관에 도착했는데 경비원들만 보이고 관람객 없는 박물관
개관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렇다해도 썰렁한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썩 좋지않다.
사진촬영은 원천적으로 금지되고 전시품들의 종류도 많지 않다.
고구려 시대의 금으로 된 말 장식품들, 귀고리, 금가락지, 동배, 칼, 갑옷, 등
산화 혹은 부패 정도가 너무 심해서 보는 것마저도 부담스럽다.
시대를 거슬러 민족의 뛰어난 예술성에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고구려시대의 돌무덤을 찾아가는 길은 마을을 지나가야 하는데 좁고 험해서 차에서 내려 걸어가기로 했다.
비옷을 입고 휘적이며 걷노라니 붉은꽃이 피는 아카시아와 금낭화가 비에 함초롬히 젖고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1000 년을 거슬러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니 감개무량이다.
고구려의 장수왕총 앞에 섰다.
돌로 쌓아올려 마치 피라미드 제단을 보는 기분, 총과 릉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해설사의 말을 듣는다.
사방 12개의 호석(현재는 11개만 세워져 있다)을 세워 무덤을 보호하여 후세에 물려주는 역활이 되기도 한다.
조금 걸어서 닿은 곳은 고인돌 같은 장군총이 있다.
제단 형식을 취하면서 큰돌로 지붕처럼 막음을 하여 다른 릉과 비교되는 돌무덤이다.
선물코너에서 광개토태왕비문이 새겨진 돌을 기념으로 샀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집안은 고구려의 영혼이 살아있는듯 곳곳에 문화유적이 있다.
오희분오호묘의 벽화는 좌청용 우백호와 사신도, 악기를 다루는 여인 등이 그려져 있어 설화적인 요소가 깔려있다.
사후 세계에도 영원히 살아있기를 기원한 느낌이 유토피아적이다.
비가 조금 걷히는 하늘을 보며 4 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단동이다.
단동은 북한과 인접한 도시로 압록강의 애환을 직접 느낄수 있다고 한다.
유람선을 타고 멀리 북한땅이 보이는 곳까지 간다.
망원경을 빌려서 바라보는 저곳에 나의 동족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내려앉는다.
강가에서 빨래하는 여인과 염소를 데리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군인들의 움직임도 보인다.
말이 나오지 않고 한숨만 나오는 단절의 안타까움을 어떻게 표현할까.
돌아가는 배가 야속해서 눈물이 나오는건지 알수가 없다.
압록강 단교를 보러 왔는데 시간이 늦어 닫힌 문, 가이드의 간청으로 겨우 말미를 얻어 철교위에 올라간다.
전쟁을 치루면서 어쩔수 없는 선택으로 폭파를 했겠지만 그로인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역사가 되어버렸다.
철교 옆에는 다른 다리가 있어 화물기차와 트럭이 자유롭게 신의주 공단으로 오가고 있다.
신의주 공단에서 흰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에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일몰이되자 다리발에 일제히 불이 들어오고, 강물에 비치는 황색이 주는 쓸쓸함이 마치 가을속으로 달리는듯 하다.
압록강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안녕이라고 조용히 말을 전한다.
단동은 상권이 매우 발달한 곳으로 활발하고 사회주의 냄새가 없는 자유로운 도시다.
묘향각이라는 곳에서 북한인이 하는 식사와 공연도 함께 보면서 종업원들의 미소도 즐긴다.
저녁이 되자 서서히 밀려오는 피로감이 온몸으로 엄습한다.
오늘밤이 지나고나면 내가 사는 나의 집으로 돌아간다.
사나흘동안 나의 역사와 함께 살아냈으니 여한이 없고 오히려 은혜로운 삶이었음을 적는다.
3박 4일간 여행으로 내 삶이 화려하게 전개 될 것같은 좋은 예감을 해본다.
무엇보다도 남편과의 여행이 더더욱 값지고 편안했다.